Eje, Insight Trip 🇺🇸🇨🇦

길고 긴 서론, 이야기의 시작.

2je 2023. 11. 15. 00:06

* 길고 긴 이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마음에 덧붙여 한번 더 양해와 안내를 드립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적은 내용으로 작성자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내용에 따라 정확한 내용을 기재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나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판단되는 것에는 각주처럼 흐린 글씨로 추가 설명을 적어 두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

 

아이 키우는 엄마는 다 똑같이 산다. 나도, 너도.

내 아이가 4살이던 2021년 나는 일하는 여성으로 돌아갔다. 경력이 단절되어 있던 나는 쉬이 복직하려고, 내 전공과 이전 경력을 살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복직했다. 그렇게 1년, 2년 집에서는 내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서는 내 아이와 또래인 유치부 아이들을 키우면서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정말 감사하게도 내 능력을 인정받아 평교사에서 직책을 받아 직장에서 팀장으로 일했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커리어우먼처럼 멋지게 일하는 듯했지만.. 우리나라 워킹맘의 현실은 알다시피 녹녹지 않다. 그렇다고 내 배우자가 육아와 살림에 아주 손을 놓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근무 유연제를 신청한 남편이 아이의 아침 시간을 온전하게 맡아서 등원을 책임져 주고 있었고, 저녁에 아이 하원과 돌봄은 내가 맡아서 하면서 나름 우리 부부는 균형 있게 나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인생이 수학문제처럼 모든게 그렇게 딱딱 맞게 떨어지지 않았다. 꼭 바쁠 때, 정신없을 때, 제발 이러지 말았으면 할 때, 아이가 아프기도 했고, 회사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팀장인 내가 빠질 수 없는데, 하나뿐인 내 아이가 다니는 기관에서도 부모가 참여하는 행가가 열리기도 하고.. 또 워킹맘이어서가 아닌 직장인으로서의 고충인 직장동료들과 팀원들과의 고충이 내 자신과의 문제와 부딪힐 때 한계가 보이기도 했다. 나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겉으로는 센 척도 많이 하지만, 정말 스트레스 취약체 유리멘탈이다. 그렇게 나는 시련에 시련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얽히고 설키면서 그렇게 상황이 꼬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술도 많이 마셨고 감정이 점점 사라지다 못해 얼굴에 표정이 사라져 갔다. 일은 해야 하니 내 온몸에 있는 감정을 다 끌어다 일할 때 쓰고, 집에 오면 정말 감정이 하나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힘 하나 없이 말하거나 무기력해했다. 10년을 넘게 안 내 지인들 혹은 신랑이 사람이 달라졌다고, 그러다가 성격 버리겠다고 까지 했었으니까 말 다했다. 

그러다가 매년 형식적으로 하는 계약시기에 결국 나는 1년짜리가 아닌 7월까지만 하겠노라 회사와 계약했었다. 그게 올해 2월이었고, 내 계약 종료가 약 2개월 쯤 남은 시점 연장에 대해 회사는 조용히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아진 건 없었지만, 그저 그렇게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당연히 회사와의 계약을 연장하고서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똑같은 일상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며 갈팡질팡 하던 나.

내가 달라질 기회가 그렇게 찾아왔다. 

 

내가? 네가? 그게 말이 돼?

조금 다른 이야기로 나와 신랑이 연애때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는 '여행 다니기'였다. 흔히 말하는 미친 듯이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역마살' 가만히 못 있는 사람들인데, 한 번은 임신해서 만삭이었을 때 정오쯤 둘이 차를 타고 드라이브나 갈까 하고 나와서는 새로 생긴 고속도로를 타보자 하고는 '충주상주 고속도로'를 타고, 7번 국도를 타고, 그대로 강원도를 갔다가 매운탕을 먹고는 '서울양양고속도로' 내린천 휴게소가 이쁘다던데 하며 들러 구경하고는 집에 자정에 온 적이 있다. 임신하면 차도 오래 타지 말라는데.. 우리는 정말 이런 점이 잘 맞았더랬다.

그런 우리 신랑이 회사에서 하는 일 중  '역마살'과 잘 맞는 업무가 있다. 바로 특정 행정구역 안에 있는 지역에서 여러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가, 로컬크리에이터들을 만나고 있다. 그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장소를 찾아가고, 여러가지 일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곳을 알리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일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쉬는 주말이면 그 장소들 중 멋진 곳들에는 나와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중 몇 곳은 이미 내 최애 장소가 될 정도로 너무나 좋은 사람, 좋은 곳들이 넘쳐난다. 

*구역 또는 지역을 뜻하는 단어 로컬(Local)과 창조 또는 창작하는 하는 사람,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크리에이터(Creator)를 합성해서 로컬크리에이터(Local Creator)라고 부른다. 2022년 정책용어사전에 등록되었다. 
출처:나비스(NAVIS)  https://www.nabis.go.kr/termsDetailView.do?menucd=189&gbnCode=S51&eventNo=360

그런 좋은 곳에 가면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정성들여 찍은 사진과 글을 SNS 계정에 올렸고, 가끔은 블로그에 정성 들여 쓴 소개글을 포스팅하다 보니 어딘가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이 누군가에게도 좋은 장소로 공유되고, 내가 느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그 과정이 좋았다. 종종 신랑이 그 장소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듯이 지금처럼 잘 포스팅해 줌 좋겠다고 해서 때로는 나는 취미로 하는 건데 업무처럼 되는 게 싫어서 괜히 퉁퉁 안 하기도 했더랬다. (청개구리, 하하) 

신랑이 내가 쓴 글을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소셜계정에 공유할 때가 있었고, 그게 도움이 된다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그저 나에게 글을 쓰게 하기 위한 달콤한 말이겠거니 했는데 이걸 조금 다르게 발전하면 될 수 도 있으려나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들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누구나 쓸 수 있는 소셜 계정 속 맛집탐방기 혹은 핫플탐방기 정도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냉철하게 말하자면.

신랑이 insight Trip을 한국에서 진행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며 말했다. 사실 이 미국 출장이야기는 작년부터 계속 있었지만, Covid-19 팬데믹과 여러 이유로 안갯속에 머물러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올해로 정말 미국행이 확실시되는 건지 무언가 윤곽이 잡히고 있다며 알려왔다. 하루하루 날짜가 갈수록 윤곽이 잡혀가는 미국 출장 소식에 괜히 내가 가는 것처럼 들떴고, 어느새 나는 나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업무차 가는 미국행에 거기에 내가? 가족이?? 요즘 시국 같아서는 절대 말도 안 될 이야기인데, 자꾸 나도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미국에서 보고 듣고 하는 것들 기록하면 나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안되려나?

예전에 어렴풋이 해외 출장갈 때 자비로 갈 수 있으면 나는 자유여행하면 좋겠다 하고 둘이 농담 삼아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터라..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그게 말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준 분들이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찾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던 그분들이었다.

 

할 수 있어요! 함께 해 볼까요?

앞서 말했듯 내가 좋아하는 최애 장소들 중 몇 곳의 장소들의 대표님들과는 정말 감사하게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며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분을 갖고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신랑 덕분이고, 감사하게도 마음을 넓게 써주신 대표님들 덕분이다. 멀고도 가까운 부산 영도에서 공간을 운영 중이신 미녀 여자 대표님과 우리나라 1세대 푸드트럭을 운영하셨던 츤데레 대표님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 귀한 두 분과 함께 식사하던 중 대표님 두 분께서 내 현재 고민에 대해 알고 계신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고, 이야기 나누던 중 이 기회 삼아 함께 미국에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먼저 손 내밀어주셨다.

사실 나도 안다. 그동안 내가 포스팅하던 글이나 게시물들을 보시고 내 가치를 높게 사셨다기보다는 내 상황에 대해 이해하시고, 뭐든 해보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하신 거란 걸. 어차피 주저앉아서 고민해 봐야 당장 달라질 게 없고, 가만히 주저앉는 걸 선택했다가 나중에 해볼걸 할 걸 하고 후회할 바에 더 넓은 세상 보고 와서 후회해봐도 좋다 생각하신 게 아닐까? 그리고 사실.. 그냥 여행으로 가도 좋았을 텐데 후회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걸 노리셨을까? 하하.

그리고... 미국에 가게 될 경우 비용이나 육아 등 내가 기혼인 이상 여러 가지 생각할 것이 많았기에 결정하는데 나 혼자만 생각할 수 없어서 쉽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신랑도 머물러 있지 말고 일단 해 보자고 내 등을 밀어줬다. 두 대표님들 믿고 같이 갔다 오라며. 당신이 열심히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니, 당신 미래를 위해 쓰는 게 맞다며 등 밀어줬더랬다. 그래서 나는 등 밀어주던 신랑에게 못 이기는 척 등 밀렸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미국을 가기로 결정했다. 내 가치를 알아봐 준 분들과 인사이트를 얻으러 간다는 마음으로..! 말 그대로 질렀다.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미국 가겠어'라는 마음도 컸고,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나로서 온전하게 이 분들과 같이 다니면서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언제 또 얻을 수 있겠어?'라는 마음이 컸기에
질렀다. 솔직히. 하하하하하.

 

진짜, 그만두려고?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뭐 하게? 

회사에는 계약기간까지만 재연장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고, 내 퇴사 이후 후임교사 채용과 인수인계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전히 회사와 퇴사예정자인 나와의 불협화음은 존재했지만, 상관없었다. 계약 재연장을 고민하던 때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하루에 열두 번씩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다잡느라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오히려 더 편안했고, 미국행을 생각하면 설레는 마음이 커서 좋았다. 

회사에는 정말 가까웠던 직장동료 빼곤 미국행을 말하지 않았던 터라 몇몇 동료들 혹은 직장 동기들은 묻곤 했다. "진짜 그만두실 거예요? 그만두고 뭐 하시게요?", "나이도 있는데, 다시 취업하려면 힘들 텐데, 계속 일하지?" 등등.. 하다못해 직장의 대표는 나중에는 내가 다른 일쪽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밝혔던 퇴사사유에는 비웃음을 날리며, 하던 공부 망해서 다시 돌아오거들랑 다른데 취업자리 필요할 텐데 연락하란 식이었으니까.. 하.. 다시 생각하니 혈압이 오르고, 오기가 차올라서 갑자기 혈압이 오르지만... 알고 있다. 이들 중에 진심으로 내 미래에 대한 진짜 걱정을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불안감을 증폭시켜 현실에 안주하게 하려는 대부분의 말이었으리라. 나도 그 불안감에 현실에 안주하면 적어도 '적당하게 안정감 있게 어느 정도는 괜찮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머물려고 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결정했고, 나는 미국에 갈 거니까. 가서 보고 올 거니까. 그리고 정말 내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나는 일주일, 한 달 만에 무언가 성과를 내려고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당시에 그들이 나에게 하던 조롱은 나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저 그들 스스로를 깎아먹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뿐. 나는 내가 미국에 가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로 시야가 넓어진다면 또 다른 게 보일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오히려 내가 아직은 모르는 분야니까 또 나도 그들도 모르는 더 좋은 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가서 인사이트를 얻고 오면 되는 거 그거 하나만 지금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었다. 

 

저도 선발대에 끼워주시면 안 될까요?

7월 말 미국으로 출발하는 신랑의 출장 일정과 출발 인원들이 정해졌는데, 역시나 이 로컬크리에이터 분들의 열정이 남달랐다. 신랑과 함께 하는 대표님들 중 몇몇 분은 자비를 더 들여서 가시는 분, 100% 자비로 가시는 분도 계셨다. 그중 나를 미국행으로 인도해 주셨던 부산 대표님, 세종시 최고 힙한 로컬크리에이터 대표님까지.. 

더 놀라웠던 건 신랑의 미국 출장 일정은 포틀랜드와 시애틀 두 도시의 일정이었는데, 다른 도시의 특정 부분까지 보고 싶어서 부산 츤데레 대표님과 세종시 힙한 대표님 두 분이 텍사스의 오스틴으로 먼저 가셨다가, 캐나다 밴쿠버까지 들러서 보고 오신다고 하셨다.

솔직히 욕심났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에 내가 언제 또 갈지 모르고, 온전히 '나'로 배울 수 있는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더더더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두 대표님은 남자분이어서 내가 간다고 하면 숙소부터 틀어지게 된다. 그래서 가려면, 아예 부산 미녀 대표님까지 함께 움직여야 했다. 사실 굉장히 민폐가 될 수 있는 부담스러운 이기적인 부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미녀 대표님도 분명히 함께 가시면 얻어오는 인사이트가 있으시리라 생각하고 최대한 정중히 여쭤봤다. 혹시나 부담이 되시는 게 아니라면, 남자 대표님들과 함께 오스틴 일정부터 가면 안 되겠냐며.. 오스틴부터 힘들다면 캐나다부터라도 같이 가고 싶다며 부탁드려 봤다.
미국 출장에 두 지역이 더해지면 최종적으로는 5일 정도 일정이 추가되어 총 12일의 일정이고, 텍사스 오스틴은 워낙 더운 지역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공간을 운영하시는 대표님이기에 긴 출장 일정도 분명히 부담이 되실터였다. 길고 긴 일정으로 분명히 힘드셨을 텐데, 며칠 뒤 선뜻 "그래, 함께 가요!" 하며 용기 내주신 미녀 대표님 덕분에 우리는 그렇게 4명이서 오스틴 선발대가 되어 출발할 수 있었다. 

선발대 인원이 정해지고, 대표님들의 일정이 정리되면서 우리는 바로 항공권 구매부터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행 항공권을 구매하면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한 발을 내디뎠다. 아니, 나는 그렇게 한 발 내디뎠다.

iphone13pro_insight trip in USA/CANADA(20230605)

 

Insight Trip in America & CANADA!

 주제가 잡히고 나서 나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자료도 열심히 찾아야 했고, 내가 뭐를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도 알아야 했기에 사전 공부가 필수였다. 그래서 우선은 포틀랜드에 집중했다. 로컬의 성지로 불리는 <포틀랜드>가 이 여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이 전에도 이곳을 다녀온 분들이 있었기에 자료 또한 있어서 접근하기가 가장 쉬웠고, 이미 진행된 지역이라 우리가 참고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포틀랜드 지역에 대한 자료를 먼저 제일 가까운 조력자에게 요청했고, 윤주선 박사님이 2018년도에 포틀랜드에 다녀와 작성하신 <미국 포틀랜드 운영자 중심의 마을 재생> 보고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보고서를 토대로 구글 지도를 뒤져가며 현재 그곳들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인터넷을 검색하며 공부해야 했다. 그 당시에 현장답사를 통해 평가된 포틀랜드의 기관들은 현재 현지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아직도 그 자리에서 현존하는지, 여전히 그 기관의 가치를 실현하며 더 나은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등등 놀랍게도 내가 관심 갖고 꼭 가보고 싶다 생각한 기관은 폐업한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흔한 사회 현상으로 인해 임대비용이 더 저렴한 곳으로 이전한 곳도 있었다. 그런 곳들 중 관심 가는 곳 몇 곳은 현지에 가서 직접 볼 수 있는지, 가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글 지도나 노트에 표기해 가며 여행 멤버들과 함께 미팅할 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준비해 갔다. 

더불어 여행에 함께 하기로 한 대표님들께서 내가 평소에 하던 사진이나 글과 더불어 영상으로 담아보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해주셔서 영상으로 담는 방법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영상으로 무언가를 촬영해서 어딘가에 올려본 기록이 없었던 나. 그렇게 나는 틈만 나면 미친 듯이 검색해야 했다. 알아야 할 게 많았고, 알고 싶은 게 많았고, 필요한 것도 많았다.

 

드디어 , 미국으로!! 

회사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미국에서 사용할 짐들을 캐리어에 모두 꽉꽉 눌러 담고서 나는 그렇게 7월 뜨겁던 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미국으로 먼저 떠나기로 한 멤버들 부산 미녀대표님, 츤데레 대표님, 세종 힙한 대표님까지 4명이 모두 모여 성공적인 여행을 기원하며 인증샷 한 장을 찍어 남기고, 나는 그렇게 우리 집 꼬맹이와 신랑의 배웅을 받으며 설레는 미국행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iphone13pro_insight trip in USA/CANADA(20230726)

7월 26일  pm2:40 인천 출발 -> 7월 26일 am 10:20 LA도착 (국제선 아시아나 항공 이용) 
7월 26일 pm 2:29 LA 출발 -> pm 7:29 오스틴 도착(국내선 델타 항공 이용) 
7월 30일 am 6:00 오스틴 출발 -> 7월 30일 am 8:27 시애틀 도착(국내선 델타 항공 이용)
시애틀 공항 렌터카 픽업 후 캐나다 국경 통과 후 밴쿠버로 차량 이동.
7월 31일 캐나나 밴쿠버에서 미국 국경 통과 후 시애틀에서 미팅 후 포틀랜드 숙소로 차량이동, 후발대와 만남.
8월 4일 포틀랜드 숙소 체크아웃 후 시애틀 숙소로 차량이동.
8월 6일 pm 2:40 시애틀 출발 -> 8월 7일 pm 5:45 인천 도착 (국제선 아시아나 항공 이용)

이렇게 일정표만 보면 굉장히 살인적인 거 같은데.. 체감상 그리고 뒤로 갈수록 너무나 짧아서 시간이 가는 게 아쉽다고 느꼈던 미국 일정은 총 12일이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인 텍사스 주의 오스틴과의 시차가 16시간 정도 있었다. 또 시차에 적응할만하다 할 때쯤 이동했던 캐나다와 시애틀은 2시간의 시간차가 또 있어서 우리 몸과 정신은 아주 버라이어티 했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너무나 즐겁게 보내다 왔다. 미국은 총기 소지가 된다, 밤에는 위험하다, 골목길을 조심해라 등등 여러 이야길 듣고 왔던 미국이지만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었고, 내가 겪은 미국은 대체로 친절했고, 살만했고, 좋았다. 좀 더 머물고 싶었다......... 결론은 오기 싫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가고 싶다. 

미국에서 하루에 한 번씩 인스타그램에 무조건 자정을 넘기지 않고 포스팅을 하리라 다짐했는데, 하루 일정이 자정을 넘겨 끝날 때가 많았고, 올리고 싶은 사진이 너무 많아서 10장만 추리기가 너무 힘들어서 1개로 올릴 수가 없어지기 시작했고, 한두 번 인스타가 오류로 내 피드를 씹히듯 올리면서 나는 잠에게 졌다.

시차적응에 지면서 잘 수 있을 땐 자야 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엔 정말 좀비처럼 잠들어서 일행이 내 코 밑에 손으로 숨 쉬는지 확인했다고.. 

 그래서 결국 밀린 피드를 이렇게나마 게으르지만 여기에 하루씩 풀어보려 한다. 저 일정대로 순서대로 풀어보고, 왜 미국 다녀온 게 7월-8월인데 아직도 영상물이 없는지까지 결과까지 전부 글로 남겨야겠다. 내 기록이라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